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클럽 경력 (문단 편집) === 1968 === 1968년 주립 리그에서는 22승 1무 3패를 기록하며 가히 압도적인 승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산투스의 승점은 45점, 2위 코린치안스의 승점은 34점이었다. 산투스는 1967년의 주립 리그 우승 덕분에 전반기의 호베르투 고메스 페드로사 챔피언십과 후반기의 타사 브라지우 참가 자격을 얻었다. 호베르투 고메스 페드로사 챔피언십에서는 자신들의 발목을 자주 붙잡았던 지역 라이벌 파우메이라스가 최종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분 좋게 우승을 달성했다. 그런데 산투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전국 단위의 리그에서 우승하며 3년 만에 얻게 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참가 기회였지만, 브라질 축구협회가 1970년 월드컵 남아메리카 예선을 위해 브라질 팀들의 리베르타도레스 참가를 막은 것이다. 산투스는 원래 타사 브라지우에도 참가해야 했지만 이 소식을 듣고 나서 곧바로 타사 브라지우 출전을 거부했다. 이는 타사 브라지우의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파우메이라스도 마찬가지였다. 파우메이라스 역시 타사 브라지우 출전을 거부했다. 산투스와 파우메이라스라는 상파울루의 양대산맥이 빠져버리자 전국 리그 우승의 문턱에서 항상 물만 먹었던 히우지자네이루 챔피언 보타포구 FR의 숨통이 트였고, 보타포구는 1968년 타사 브라지우에서 [[자이르지뉴]]와 [[제르송(1941)|제르송]] 등의 선수를 주축으로 하여 그토록 염원하던 전국 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파일:1968pele.jpg|width=100%]]|| ||엘리자베스 2세가 전달해 준 컵대회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펠레|| 이 경기는 1968년 11월 10일에 진행되었던 경기인데, 공식 기록에는 없는 대회이다. 멤버 구성을 보았을 때, 아마 연마다 주립 리그 올스타팀끼리 슈퍼컵 개념의 대회가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경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tQDN3RBXzQ|영상 링크.]] 마라카낭에서 열린 이 경기에는 아우베르투도 참여했으며 펠레가 상파울루 팀 대표로 주장 완장을 찼다. 그리고 아우베르투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상대 공격수들을 틀어막았고, 결국 히우지자네이루 클럽 대표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사진 오른쪽을 보면 이 경기에서 히우지자네이루 클럽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던 [[제르송(1941)|제르송]]도 보인다. 역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참가 자격을 충족하지 못해 참가하지 못했다. 국가대표팀에 복귀하던 시점에 인터컨티넨탈 슈퍼컵이 열렸다. 이 대회는 1960년부터 1967년까지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우승했던 팀을 모두 초청하여 열렸다. 참가 팀은 '''[[레알 마드리드 CF]](1960), [[CA 페냐롤]](1961, 1966), [[산투스 FC]](1962, 1963),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1964, 1965), [[라싱 클루브 데 아베야네다]](1967)'''였다. 그야말로 60년대 최강팀들의 총집합이었다. 먼저 남미 팀끼리 최강자를 가렸다. 1968년 11월 19일에 열린 라싱 클루브와의 경기에서 펠레가 선제 결승골을 득점하며 2-0승리를 기록했다. 아우베르투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3승 0무 1패라는 좋은 성적을 이끌었고, 페냐롤을 1점 차로 따돌리며 산투스를 남미 대표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유럽 최강자전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CF가 출전 취소를 선언하며 자동으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가 결승전에 올라오게 되었다. 인터컨티넨탈 슈퍼컵 결승전은 1969년 6월 24일에 열렸다. 인테르의 홈인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에서. 인테르는 자친토 파케티가 결장했지만 [[산드로 마촐라]], [[마리오 코르소]], 자이르, 안젤로 도멘기니, [[타르치시오 부르그니치]] 등 쟁쟁한 스타들이 선발 출전했다. 산투스는 펠레를 필두로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클루두아우두, 히우두[* 참고로 앞에 소개한 산투스의 4인방은 모두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적이 있다. 물론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클루두아우두는 당시에는 아직 골을 기록하지 않은 상태였다.], 에두 등이 선발 출전했다. 경기는 역시 팽팽했다. 경기 57분, 산투스의 토니뉴 게헤이루가 골을 터뜨렸다. 이 득점이 그대로 유지되며 산투스가 1-0승리를 거두었고, 1960년대를 대표하는 팀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물론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산투스가 무조건 1960년대 세계 최고의 팀인 것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